전쟁이 터졌을 때, 금을 사야 할까 방산주를 사야 할까

2026. 3. 20. 09:00투자

3월 3일, 코스피가 -7% 폭락하는 날 나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빨간불 일색인 HTS 화면에서 유독 파란색으로 빛나는 종목들이 있었다. 한화시스템 +29%, LIG넥스원 +20%, 한화에어로스페이스 +19%. 전 종목이 피바다인 날 방산주만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뉴스를 보니 금값도 폭등하고 있었다. 온스당 5,200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가를 새로 썼다는 소식이 쏟아졌다. 이 두 자산이 동시에 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겼다. 지정학 리스크를 헤지 하려면 금이 나을까, 방산주가 나을까? 오늘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려 한다. 두 자산의 작동 원리가 어떻게 다른지, 각각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포트폴리오에 어떻게 담을 수 있는지까지.

 

지정학 리스크란 무엇이고, 왜 자산 가격이 움직이나

먼저 개념을 정리해보자. 지정학 리스크(Geopolitical Risk)란 전쟁, 분쟁, 테러, 제재 같은 정치·군사적 사건이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위험이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시장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반응 1. 안전자산으로 도피,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주식)을 팔고 안전 자산(금, 달러, 채권)을 산다. 금이 오르는 이유다. 반응 2. 실질 수혜 기대, 전쟁이 나면 무기가 필요하다. 방공망을 보강해야 한다. 탄약을 채워야 한다. 방산 기업들의 수주가 늘어난다는 기대감에 방산주가 오른다. 같은 지정학 리스크에서 출발하지만,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전혀 다르다. 금은 "공포 심리"에 반응하고, 방산주는 "실질 수요 기대"에 반응한다.

 

금 5,000달러 시대, 지금 사는 게 맞을까

금값은 2026년 3월 현재 온스당 5,300달러대를 오가고 있다. 불과 1~2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상승이다. 금이 오르는 이유는 지정학 리스크 하나가 아니다.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 지정학 프리미엄, 미·이란 전쟁, 러·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글로벌 갈등 구조 고착화. 불확실성이 클수록 금의 "안전 자산" 역할이 부각된다. 달러 신뢰 약화,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달러 신뢰를 흔들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금 매입을 늘리고 있다. 중국, 인도, 중동 국가들의 금 보유량이 빠르게 늘었다. 인플레이션 헤지, 원유 가격 상승 → 에너지 비용 상승 → 물가 상승 압박. 인플레이션이 올 것 같을 때 금이 오른다는 전통적인 공식이 다시 작동하고 있다. 원화 약세 효과,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 금은 달러로 표시된다. 원/달러 환율이 1,400~1,500원대라는 건 원화로 살 수 있는 금의 가치가 그만큼 비싸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면 환율 상승 수혜도 금 투자에 녹아 있다.

 

반대로 금의 단점은 무엇인가. 금은 배당이 없다. 이자가 없다. 그냥 보유하는 것 자체에서 현금 흐름이 생기지 않는다. 금리가 높은 환경에서는 "이자를 포기하면서까지 금을 살 이유가 있나"라는 반론이 나온다. 그리고 금은 전쟁이 끝나면 빠진다. 공포 심리가 진정되면 안전 자산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금값은 내려온다. 지정학 리스크가 해소되는 순간 가장 빠르게 빠지는 자산 중 하나다. 금 ETF로 어떻게 담을 수 있나? 주식 계좌에서 바로 살 수 있는 국내 상장 금 ETF들이 있다. ACE KRX금현물, TIGER KRX금현물이 대표적이다. 이름에 (H)가 없으면 환노출형으로 금값 상승 + 달러 강세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지금처럼 원화가 약한 환경에서는 환노출형이 유리하다. 반대로 (H)가 붙으면 환헤지형으로 순수하게 금 가격 움직임만 따른다. 세금은 국내 상장 ETF 매매차익에 15.4% 배당소득세가 붙는다. ISA나 연금 계좌에서 매매하면 이 세금을 아낄 수 있어 실질 수익률이 올라간다.

 

방산주는 전쟁이 나면 항상 오르는가

방산주가 지정학 리스크에 오른다는 건 이번에 눈으로 확인했다. 코스피가 -7% 빠지는 날 방산 ETF가 +16%를 찍었다. 그런데 방산주는 금보다 더 복잡한 자산이다. 단순히 "전쟁 나면 오른다"로 요약하면 절반만 맞다. 방산주가 오르는 진짜 이유는 지정학 리스크가 장기화될 때, 각국 정부의 국방비가 늘어난다는 기대가 반영된다. 이건 단기 반짝 테마가 아니라 장기 구조적 트렌드일 수 있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넘게 이어지면서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를 GDP의 2% 이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인 500억 유로의 국방 조달 계획을 2025년에 확정했다. 미국은 2027 회계연도 국방 예산을 전년 대비 60% 이상 늘린 1조 5,000억 달러를 제안했다. 한국 방산의 강점은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이다. 유럽의 방산 기업들이 납기를 수년씩 밀리는 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현대로템의 K2 전차는 계약 후 비교적 빠르게 납품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것이 폴란드, 루마니아, 호주 등과의 대형 계약으로 이어졌다.

 

방산주의 가장 큰 리스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끝났다"는 뉴스다. 이란이 협상을 타진한다는 소식이 나오면, 혹은 휴전 협상이 시작된다는 뉴스가 나오면 방산주는 단기 급락한다. 단기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진다. 지정학 리스크가 진정되는 신호가 곧 방산주의 매도 신호가 되는 것이다. 또 방산주는 특정 지정학 이벤트에 과민반응했다가 사그라드는 패턴이 반복됐다. 러·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방산주가 급등했다가 한동안 조정을 받았다. 장기 수주 모멘텀이 실제로 실적으로 연결되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기대만 선반영 된 주가일 수 있다. 개별 종목보다 ETF로 접근하면 분산이 가능하다. TIGER K방산&우주, KODEX K방산 TOP10, PLUS K방산이 국내 대표적인 방산 ETF다. 이 안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 등이 담겨 있다. 레버리지 버전(KODEX K방산 TOP10 레버리지)도 있지만, 레버리지는 하락할 때 낙폭도 두 배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금 vs 방산주, 5가지 기준으로 비교

1. 지정학 리스크 발생 시 반응 속도

금은 전쟁·분쟁 뉴스가 나오는 즉시 오른다. 주말 사이 공습 소식이 나오면 월요일 개장 전 이미 선물 가격이 올라있다. 반응이 빠르고 직접적이다. 방산주는 조금 다르다. 전쟁이 '실질 무기 수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에 반영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하지만 일단 모멘텀이 붙으면 금보다 상승폭이 크다.

 

2. 지정학 리스크 해소 시 반응

금은 공포가 사라지면 내려간다. 단기 헤지 목적이라면 리스크 해소 전에 팔아야 한다. 방산주는 전쟁이 끝나도 국방비 증액이라는 구조적 수요가 남는다. 단기 조정은 있어도 장기 수주 모멘텀이 유지된다면 반드시 급락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적으로 연결되는 국면에서 재상승할 수 있다.

 

3. 변동성과 리스크

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자산이다. 폭락할 때 다른 주식보다 덜 빠진다는 게 증명돼 있다. 방산주는 주식이다. 전쟁 관련 뉴스에 따라 하루에 ±20%가 움직일 수 있다. 단기 변동성이 금보다 훨씬 크다.

 

4. 장기 복리 효과

금은 배당이 없다. 복리가 없다. 가격 상승분만이 수익이다. 방산주는 이익을 내는 기업이고, 매출과 이익이 성장하면 주가도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26년 영업이익은 약 4조 5,000억 원으로 예상될 정도로 실적 성장이 뚜렷하다. 배당도 나온다.

 

5. 포트폴리오에서의 역할

금은 전통적인 "방어" 자산이다. 주식이 폭락할 때 완충재 역할을 한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변동성을 낮추는 용도다. 방산주는 "공격적 방어" 자산이다. 지정학 리스크가 실적 성장 모멘텀으로 연결되는 구조라면, 단순 헤지를 넘어 알파(초과수익)를 낼 수 있다. 단, 리스크도 함께 올라간다.

 

나는 두 자산을 경쟁 관계로 보지 않는다.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정학 리스크가 구조적으로 높아진 세상에서, 두 자산을 함께 보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금은 보험이다. 주가가 폭락하는 날 금이 오른다면, 전체 포트폴리오의 충격이 줄어든다. 포트폴리오의 5~10% 정도를 금 ETF로 유지하는 건 변동성이 큰 세상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전쟁이 끝나고 금값이 내려가더라도, 그 기간 동안 다른 자산이 올랐을 것이다. 보험은 쓰지 않는 게 이상적이지만, 없으면 불안하다. 방산주는 테마가 아니라 실적이 증명되는 구조적 성장 산업이다. 단기 급등에 추격 매수하는 건 위험하다. 전쟁 뉴스에 10~20% 급등한 종목을 그 시점에 사는 건 타이밍이 좋지 않다. 조정이 올 때, 즉 지정학 뉴스가 잦아들면서 단기 매물이 나올 때 진입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실적이 수주로 연결되는지 확인하면서 보유하는 전략이 좋다. 지정학 헤지 목적이라면 이런 구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체 투자 자산의 5~10%를 금 ETF(환노출형, ISA 또는 연금 계좌 활용 권장)로 유지한다. 이건 언제든 가능하다. 방산주는 방산 ETF로 3~7% 수준을 유지한다. 단기 급등 후 조정 시점을 노려 진입하고, 전쟁 뉴스가 나와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비중만 담는다. 이렇게 하면 지정학 리스크가 터질 때 포트폴리오 전체가 녹아내리는 걸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완벽한 헤지는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헤지가 필요한 세상

2020년만 해도 이런 글을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전쟁은 교과서 속 이야기 같았고, 지정학 리스크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다르다. 러·우크라이나, 미·이란, 중동 분쟁, 미·중 갈등. 지정학 리스크는 이제 투자자가 항상 고려해야 할 일상적인 변수가 됐다. 금과 방산주는 그 세상을 살아가는 투자자의 무기다. 완벽한 무기는 없다. 하지만 아무 무기도 없이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개인적인 투자 관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특정 종목이나 ETF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니며, 모든 투자 결정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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