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사스포칼립스, 2035년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2026. 3. 5. 09:00경제

안녕하세요. 전 세계 시장이 중동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모두 멘탈을 잡아야 하는 이때 요즘 핫한 주제인 '시트리니 보고서'의 방식처럼, 미래 시점에서 현재를 돌아보는 사고 실험을 해봤습니다. 이 안에 담긴 데이터와 구조적 분석은 모두 2026년 현재의 현실을 반영했습니다.

 

프롤로그, 2035년 서울의 봄

2035년 봄, 서울 여의도 한강변 카페에 앉아서 벚꽃을 바라보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빌딩은 여전히 높고 빛이 나고,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한강은 계속 흘러간다. 그런데 무언가 달라졌다. 카페 직원은 두 명이 아니라 한 명이고, 옆 테이블의 30대는 노트북 대신 에어팟 하나만으로 AI 에이전트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창밖 여의도 증권가 빌딩의 임대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26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총이 장전되던 시간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비어 가는 나라. 2026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이었다. 이 숫자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설명하자면, 전쟁 중인 국가도, 극심한 기아 상태에 놓인 국가도 평시에 이 수치까지 내려간 전례가 없었다. 인류 역사상 기록된 가장 낮은 평시 출산율, 우리는 그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고 있었고, 해마다 그 기록을 다시 경신해 왔다. 숫자의 의미를 체감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2026년 태어난 아이들이 30대가 되는 2056년, 그들이 이끌어야 할 경제의 규모를 지금의 인구 구조로 버텨낼 수 있는가. 국민연금은 2055년 고갈이 예측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숫자가 일치한다. 연금이 바닥나는 시점과, 출산율 붕괴세대가 은퇴 직전이 되는 시점이 겹친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당장의 월급과 전세값에 바빠서, 30년 후를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채용 공고가 사라지던 시절 2025년을 전후로, 한국 대기업들의 공채 공고가 조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삼성은 수시채용으로 전환했고,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을 이유로 신입 채용 규모를 매년 축소했다. 보험사는 설계사 수를 줄였고, 대형 로펌은 리서치 어시스턴트를 AI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회계법인은 주니어 회계사 대신 AI 감사 툴 라이선스를 각자 회계법인에 맞게 만들었다. 기업들의 논리는 단순하고 합리적이었다. "신규 인력을 뽑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 팀에 AI를 붙이면 1.5배의 아웃풋이 나옵니다. 인건비는 그대로인데 생산성은 올라갑니다." 주주 입장에서 이 결정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사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별 기업의 관점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문제는 이 선택이 수천 개의 기업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방아쇠가 당겨진 순간

말로만 듣던 사스포칼립스가 한국에 상륙한 2024년 말, 미국의 투자리서치 기관 시트리니 리서치는 '사스포칼립스'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AI 에이전트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면서, 연간 수억 원짜리 SaaS 구독을 스스로 만든 AI 툴로 교체하는 흐름이 가속화된다는 시나리오였다. 미국에서 이 충격은 주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 하락으로 나타났다. 세일즈포스, 서비스나우, 어도비의 신규 계약이 줄었고, 기업들은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지 않나?"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서비스는 너무 무겁고 부분적으로 불필요했다. 한국에서 사스포칼립스는 조금 다른 경로로 작동했다. 한국은 애초에 세계적인 SaaS 기업을 많이 보유하지 못했다. 한국의 사스포칼립스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몰락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고용 시장 자체의 붕괴로 나타났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한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SaaS 대신 써온 것은 무엇이었나. 사람이었다. 엑셀을 다루는 사람, 보고서를 쓰는 사람, 데이터를 정리하는 사람, 고객 응대를 하는 사람, 미국 기업이 소프트웨어 구독을 끊듯, 한국 기업은 사람을 끊기 시작했다. 시트리니 보고서는 '지능 대체 스파이럴'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AI로 대체하면 소프트웨어 기업 직원들이 해고되고, 그들의 소비가 줄면 다른 기업의 매출이 줄고, 그 기업도 비용 절감을 위해 더 많은 AI를 도입하는 악순환이다. 신규 채용 동결은 청년 소득 공백으로 이어지고, 청년 소비 위축은 내수 시장을 축소시켰고, 내수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추가 구조조정은 그걸 더 악화할 뿐이었다. 중장년층의 조기 퇴직이 불꽃같이 일어났고, 소비 기반이 추가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용 절감을 위해 더 많은 AI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각 단계에서 보자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전체를 조망하면 시스템이 스스로 잠식하는 구조였다. 낙관론자들은 말했다. "AI로 생산성이 오르면 물가가 내려갈 것이고, 소비자들은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게 된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속도가 달랐다. 물가가 내려가는 속도는 느리고 점진적이었다. 기업들은 경쟁이 충분히 격화되기 전까지 이익을 유지하려 했고, 유통 구조의 관성이 가격 하락을 지연시켰다. 반면 인금 총량이 줄어드는 속도는 즉각적이었다. 신규 채용 공고 하나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앉았어야 할 사람의 소득이 통째로 사라졌다. 물가가 5% 내려가는 동안, 소득이 0이 된 사람에게 그 5%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다른 나라들도 AI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유독 깊이 추락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위기가 동시에 충돌했기 때문이다. 인구 절벽. 이미 시작된 소비 인구 감소는 AI 충격이 오기 전부터 내수 시장을 서서히 죄어오고 있었다. AI는 진행 중인 붕괴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수출 의존적 구조의 한국 경제는 내수가 작고 수출에 크게 의존했다. AI 시대에 수출 경쟁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버틸 수 있었지만, 글로벌 경기 충격이 오면 국내에 분배되는 과실이 급격히 줄어드는 구조였다. 취약한 안전망도 한 몫했다. 두터운 실업급여와 재교육 시스템이 한국에는 없었다. 직업을 잃는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역사적으로 기술 혁명은 항상 일자리를 파괴하고,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했다. 농업 혁명 때 농부들은 공장으로 갔다. 산업혁명 때 공장 노동자들은 서비스업으로 갔다. 그 이동은 한 세대에 걸쳐 천천히 일어났다. 개인이 적응할 시간이 있었고, 사회가 새로운 구조를 갖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AI 혁명의 이동은 달랐다. 10년 안에 압축적으로 일어났다. 45세에 회계팀에서 해고된 사람이 AI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얼마인가. 그 사람이 재교육을 받는 동안 생활비는 누가 대는가. 그 사람의 자녀는 그동안 무엇을 먹는가. 이동 자체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동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놓쳐버린 타이밍

우리는 기본소득 논쟁을 너무 일찍 포기했다. 2020년대 초, 기본소득 논쟁이 잠깐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재원이 없다." "국민연금도 적자인데." "포퓰리즘이다." 모두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논쟁이 사라진 자리에 대안이 채워지지 않았다. AI로 인한 고용 충격에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 설계는 2030년이 되어도 완성되지 않았다. 위기가 터진 후에야 불완전한 응급처치가 시작되었고, 그때는 재정여력이 지금보다 훨씬 나빠진 후였다. 생산성 향상의 달콤한 과실을 어디에 쓸 것인지 묻지 않았다. AI가 도입되면 기업의 생산성이 오른다. 그 이익은 어디로 가는가. 주주에게, 임원 보너스에, 연구개발 재투자에, 아니면 미국 빅테크로. 이 모든 것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이익의 일부를 해고된 노동자의 재교육과 소득 보전에 쓰는 구조를 법제화하는 논의는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 노동자 없이 생산성이 오른 기업의 이익에 세금을 더 물리는 '로봇세' 개념은, 기업 이탈을 우려한 반대 논리에 밀려 입법화되지 못했다. 국제 공조 없이 한국만 시행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민 정책이었다. 일본은 2010년대부터 조심스럽게 이민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독일은 그보다 일찍 실용적인 이민 정책을 구축했다. 한국은 단일민족의식과 사회적 통합 우려를 이유로 이민 정책의 대전환을 계속 미뤘다. 2030년대에야 제한적으로 문을 열었을 때, 인구 구조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기울어진 후였다.

 

마지막 끈

이제 현재로 돌아와서 2026년, 아직 분기점 앞에 서 있는 시간으로. 위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절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개인에게 이동의 속도에 올라타는 것이 전략이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인지 노동이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것은 판단, 공감, 창의성, 그리고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지금 당신의 일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면, 그것을 부정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말자. 대신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AI를 다루는 능력을 갖춰라. AI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전략일 수 있다. 프롬프트 설계, AI 결과물의 판단과 큐레이션, 업무 프로세스의 AI 적합 재설계. 이것들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다.

 

소득의 다각화를 시작하라. 단일 고용에 모든 소득을 의존하는 구조는 AI 시대에 가장 취약한 구조다. 지금 당장 부업이나 투자를 시작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의 전문성이 고용 이외의 형태로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를 할 때, 한국 내수의 구조적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26년 3월 4일, 오늘 증시가 폭락했다. 어떤 이는 저점 매수의 기회라고 말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맞을 수 있다. 그러나 10년의 시계로 보면, 한국 내수 시장의 구조적 매력도는 계속 낮아진다. 인구는 줄고, 소비 기반은 좁아지고, AI로 인한 고용 충격은 가속화된다. 장기 투자의 관점에서 자산의 상당 부분을 달러 자산, 미국 지수, 글로벌 AI 인프라에 배치하는 것은 단순한 투자 전략이 아니라 구조적 위험 회피다. ISA 계좌를 활용한 다양한 ETF 적립, 그리고 미국 빅테크 직접 투자의 조합은 이 시대 한국 투자자에게 가장 현실적인 헷지 전략이다.

 

기술이 일자리를 파괴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 메커니즘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막아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설계해야 하는 것은 이동의 속도를 개인이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완충 시스템이다. 실업급여 기간의 대폭 확대. 재교육을 위한 소득 지원. AI로 생산성이 오른 기업의 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과세 구조. 이민 정책의 현실적 전환. 기본소득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 이 모든 것이 지금 당장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논의조차 하지 않으면, 위기가 터졌을 때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경고했다. 한국은 들었지만 행동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게 경고가 될 차례인지, 아니면 반면교사를 넘어 새로운 모델이 될 차례인지는 지금 이 분기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강은 여전히 흐르고. 서울은 여전히 빛난다. 사람들은 여전히 커피를 마신다. 그러나 어떤 미래의 한강변인 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달려 있다. 위기를 보되 절망하지 않는 것. 구조를 이해하되 체념하지 않는 것. 개인으로서 움직이고, 사회로서 설계하는 것. 코리아 사스포칼립스는 예언이 아니다. 경고다.

경고는, 아직 늦지 않았을 때 하는 것이다.

 

 이 글은 개인적인 투자 관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특정 종목이나 ETF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니며, 모든 투자 결정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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