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커진 3조 달러 시한폭탄, 사모대출과 AI의 충돌

2026. 3. 18. 09:00경제

요즘 금융 뉴스를 보면 낯선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모펀드, 사모대출, BDC, PIK 대출.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단어들이지만, 정작 이게 뭔지, 왜 갑자기 이슈가 됐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지금 이 시장에서 꽤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JP모건이 담보 가치를 하향 조정했고, 블루 오울 캐피털은 환매를 중단했다. UBS는 최악의 경우 부도율이 13%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AI가 있다. 오늘은 이 복잡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보려 한다.

 

사모펀드란 무엇인가, 공모펀드와 뭐가 다른가

펀드라는 건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서 투자하는 구조다. 우리가 흔히 아는 펀드는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공모펀드다. 사모펀드는 다르다. 소수의 거액 투자자들로부터 비공개로 자금을 모은다. 49인 이하 투자자, 최소 수억 원 이상 진입 조건이 붙는다. 금융당국의 규제도 공모펀드보다 훨씬 자유롭다. 이 자유로움이 사모펀드의 핵심이다. 공모펀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사모펀드는 할 수 있다. 기업을 직접 인수할 수 있다. 레버리지(차입)를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기업에게 직접 돈을 빌려줄 수 있다. 사모펀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PEF(경영참여형)는 기업을 직접 인수해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헤지펀드는 주식, 파생상품, 외환 등을 자유롭게 운용하며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수익을 추구한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핵심인 사모대출 펀드가 있다.

 

은행이 떠난 자리를 채운 사모대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달라졌다.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이었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은행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자본 건전성 기준이 높아졌고, 위험한 대출은 줄여야 했다. 그러자 은행들이 떠난 빈자리가 생겼다. 중소기업, 비상장 기업들이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투자은행을 통해 채권을 발행하는 신디케이트론 시장도 2020년 코로나 충격으로 한동안 막혔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사모대출(Private Credit)이다. 사모펀드가 직접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은행 대신 대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금리는 은행보다 높지만, 은행이 안 빌려주는 곳에도 빌려주니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생겼다.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0년 코로나 이후 특히 가팔랐다. 현재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약 1조 7,000억 달러(직접 대출 기준), 넓게 보면 3조 달러에 달한다. 불과 10년 전과 비교하면 수배가 커진 것이다. 여기서 BDC라는 게 등장한다. Business Development Company의 약자로, 사모대출 펀드를 증시에 상장시킨 형태다. 일반 투자자도 BDC 주식을 사면 사모대출 시장에 간접 투자할 수 있다. 블루 오울 캐피털, 에이리스 매니지먼트, KKR, 아폴로 글로벌 같은 이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왜 소프트웨어 기업에 집중됐나

사모대출 시장이 커지면서 어디에 돈을 빌려줄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2020년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대출처가 된 곳이 바로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대출자 입장에서 완벽한 사업 모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구독 기반 반복 매출. 고객이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잘 떠나지 않는 높은 전환 비용. 소프트웨어라 공장이나 재고가 없어 마진이 높다.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이 덜 늘어나는 확장성. 사람 수를 줄이거나 늘리기 쉬운 유연한 구조. 대출자 입장에서 이런 특성은 "이자를 꼬박꼬박 낼 수 있는 현금흐름이 있는 기업"을 의미했다. 완벽한 대출 대상이었다. 코로나 이후인 2021~2022년은 특히 폭발적이었다. 테크 기업 밸류에이션이 정점을 찍고, 사모펀드들이 경쟁적으로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그 자금 조달을 사모대출이 담당했다. 당시 기업 인수 딜에서 사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70%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이전에는 15~25% 수준이었다. 즉 지금 사모대출 시장에는 가장 비쌀 때 산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빚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2025년부터 시장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딥시크가 등장하고, AI 에이전트가 확산되고, Claude Code 같은 도구가 나오면서 "소프트웨어 개발과 운용을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AI가 소프트웨어 시장에 미치는 위협은 두 방향이다. 첫 번째는 진입 장벽 붕괴다. 예전에는 기능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상당한 개발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성 SaaS를 구독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AI 코딩 도구가 발전하면서 기업들이 자체 소프트웨어를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비싼 구독료를 낼 이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존 기능의 직접 대체다.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자동화, 고객 응대, 이메일 관리 같은 단순 반복 기능을 AI가 직접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해당 기능에 특화된 SaaS 기업들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이게 대출 시장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대출자 입장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에 돈을 빌려줬을 때 예상했던 현금흐름이 예상대로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부도나면 회수할 수 있는 자산이 없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자산은 대부분 코드와 지식재산권, 즉 무형자산이다. 담보로 잡아도 팔기가 어렵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 우려가 시장에서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월 초, UBS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사모대출 시장의 25~35%가 AI 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미국 사모대출 부도율이 13%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블루 오울 캐피털, 에이리스 매니지먼트, KKR, TPG, 아폴로 글로벌 등 주요 사모대출 운용사 주가가 일제히 두 자릿수 폭락했다. 같은 기간 S&P500은 0.1% 하락에 그쳤다. 2월 말, JP모건이 움직였다. 사모대출 기업들이 보유한 소프트웨어 대출의 담보 가치를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대출들은 사모대출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담보로 쓰이기 때문이다. 담보 가치가 내려가면 이들이 빌릴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든다. 자금이 줄면 새로운 대출을 집행하기 어려워진다. 신용 경색의 시작이다. 3월에는 PIK 대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PIK(Payment-In-Kind)는 이자를 현금이 아닌 나중에 갚겠다고 미루는 구조다. 빠르게 성장 중인 기업에게 숨 쉴 공간을 주는 좋은 의도로 설계됐지만, 그 기업의 사업이 악화되면 미뤄놓은 이자가 한꺼번에 부실로 터진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PIK 대출 비중이 가장 높다. 블루 오울 캐피털의 소프트웨어 특화 사모대출 펀드는 지난해 말 대규모 환매 요청으로 자산의 15%를 지급해야 했고, 유럽의 소프트웨어 기업 Team.Blue는 대출 리파이낸싱이 아예 무산됐다. 조용히 신호들이 쌓이고 있다.

 

주식 시장이나 채권 시장은 가격이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기업이 부실해지면 주가가 내려가고, 채권 가격이 내려가고, 스프레드가 벌어진다. 시장이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사모대출은 다르다. 비상장 대출이다. 가격이 공개되지 않는다. 거래되는 시장 자체가 없다. 운용사들이 자체적으로 내부 평가액을 산정하는데, 이게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는지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즉 부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이 사모대출 시장의 문제를 지적하며 "바퀴벌레"를 언급한 것도 이 맥락이다. 하나가 보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투명성이 문제가 터졌을 때 공황을 키운다. 전체 규모를 모르니 시장이 공포에 과잉 반응하기 쉽다.

 

물론 반대 시각도 있다. 그리고 꽤 설득력이 있다. 핵심 논점은 이거다. 사모대출은 주식이 아니다. 주식은 기업이 영원히 성장할 것에 베팅하는 것이지만, 대출은 그냥 만기까지 이자를 받고 원금을 돌려받으면 된다. 대출 만기가 평균 5년이고 실제 보유 기간이 3~4년이라면, AI가 소프트웨어를 그 기간 안에 완전히 붕괴시킬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은 기업을 하루아침에 죽이지 않는다. 서서히 죽이다가 나중에 갑자기다. 그 서서히 죽는 과정 동안도 현금흐름은 발생한다. 대출자에게는 그 기간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선순위 담보 대출의 회수율은 달러당 60~80센트 수준이었다. 지금 주가 하락이 시사하는 것처럼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대규모로 파산하고 거의 아무것도 회수 못 하는 극단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에이리스 매니지먼트 CEO는 소프트웨어 대출이 전체 자산의 6%에 불과하고, 대부분 현금흐름이 좋은 수익성 있는 기업에 낮은 레버리지로 대출했으며 부실 대출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지금 어떻게 봐야 하나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 세 가지를 정리해 본다. 첫째, 진짜 위험은 코로나 직후 빈티지에 있다. 2021~2022년에 최고가에 인수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대출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시기 고금리 이전에 높은 배수를 주고 샀고, 이 대출이 사모대출 시장에 집중돼 있다. 이 빈티지가 얼마나 버텨주느냐가 관건이다. 둘째, 불투명성 자체가 리스크다. 부실이 얼마나 쌓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신용 시장에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지면 "실제 부실"보다 "부실에 대한 공포"가 더 큰 충격을 만들 수 있다. 셋째, 전이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사모대출 시장 자체가 망한다기보다, 이 시장의 스트레스가 다른 자산 시장으로 번지는 경로가 위험하다. 담보 가치 하락 → 자금 조달 어려움 → 신규 대출 감소 → 중소기업 자금 경색 → 광범위한 신용 위축. 이 연쇄 반응이 언제, 어떤 규모로 작동하느냐가 진짜 변수다.

 

사모대출은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에게 낯선 세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투자하는 자산운용사, 우리가 가입한 펀드, 우리나라 기관들의 해외 대체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이 시장이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바꾸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 변화가 3조 달러 규모의 사모대출 시장을 어떻게 흔들지, 그리고 그 충격이 더 넓은 금융 시스템으로 번질지는 지금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가 뭔지는 알아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커진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느 날 우리 포트폴리오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충격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공개된 자료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된 개인적 견해입니다. 특정 투자 상품이나 기업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니며, 모든 투자 결정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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